posted by 마음모아 2017. 4. 10. 00:04

국민 배우 김영애씨가 별세 했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어요~~~

얼마전 드라마 닥터스에서도 봤었는데...우리 인생이 이렇게 허무하네요~~~

 

 

 

[문화뉴스 MHN 이지현 기자] 배우 김영애가 9일 오전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김영애는 지난해 10월 췌장암이 재발한 상태였지만, KBS2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촬영을 마무리하며 시청자와의 약속을 지켰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은 결국 그의 유작으로 남았다.

 

 

 

 

 


▲ ⓒ KBS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의 제작사 팬엔터테인먼트 김희열 부사장은 "김영애 씨가 드라마 계약 시에는 아픈 걸 몰랐다. 워낙 다작을 하고 계신데다 영화에서도 센 역할을 맡아온 터여서 새 주말 드라마 50부작을 계약할 때는 사기가 높이 올라와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췌장암 재발로 현장에서 음식을 먹는 것조차 곤혹스러워 했고, 김영애 주치의는 당장 연기를 중단해야 한다고 채근했다. 그러나 여배우 김영애의 의지는 강했다. 촬영을 계속 하면서 중간중간 외출증을 끊어 병원 치료를 지속했다.
 

 

 

 

 


▲ ⓒ MBC

 
이처럼 김영애 배우 인생에는 쉼이 없었다. 아픔조차 고인을 막지 못했다. 김영애는 췌장암이 처음 발병한 2012년에도 투병 사실을 숨기고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 출연했다. MBC '해를 품은 달(2012)'에서 김영애는 대왕대비 윤씨 역할을 맡았다. 외척세력의 대지주로, 성조대왕의 어머니이자 훤의 할머니로 열연했다.
 
그의 열정만큼이나 김영애 필모그래피는 끝이 없다. 최근에는 영화 '애자(2009)', '변호인(2013)', '카트(2014)', '판도라(2017)' 등에서 인상 깊은 명장면을 남겼다. '황진이(2006)', '킬미 힐미(2015)', '닥터스(2016)' 등 화제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 ⓒ 한국영상자료원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영애는 71년 MBC 공채 탤런트 3기로 데뷔했다. 드라마 '수사반장'은 그의 첫 작품이었다. 영화 '섬개구리 만세(1972)'와 드라마 '민비(1973)'에서 주연을 맡으며 얼굴을 알렸다. 1974년 김영애는 드라마 '민비'로 제10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에는 거의 매해 텔레비전과 브라운관에서 김영애를 찾아볼 수 있었다. '강남가족', '나리집', '행복을 팝니다', '청춘의 덫' 등에 출연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다. 특히 영화 '애자'와 '변호인'은 고인의 대표작이다. 김영애는 두 작품에서 현실감 넘치는 어머니 역할을 선보이며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최강희와 현실 모녀 관계를 보여준 영화 '애자'는 엄마를 떠나보내야 하는 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영애 별세 이후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영화기도 하다. 김영애는 이 작품을 '암흑 속에서 나를 구제해 준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배우 송강호와 열연한 영화 '변호인'에서 김영애는 국밥집 아줌마 순애의 역할을 맡는다. 아들 진우(임시완)이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앞두자, 세무 변호사 송우석(송강호)는 그들을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부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극중 모델로 해 '부림 사건'을 다룬 영화 '변호인'은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과 어머니의 모정을 그려내며 큰 인기를 끌었다.
 
문재인 대선 후보는 이와 관련하여 "고 김영애님의 명복을 빈다. 한 배우의 죽음이 가까운 벗의 죽음처럼 느껴진다. 노무현 대통령의 젊은 날이 떠올라서 그런 모양"이라고 추모의 말을 덧붙였다.
 

 

 

 

 


▲ ⓒ MBC

 
배우 김영애는 '엄마' 역할을 자주 맡았지만 따뜻하고 다정한 '엄마' 페르소나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MBC '로열패밀리'는 2011년 김영애가 악녀 연기를 보여준 화제의 드라마다. 자식들의 결혼마저 사업 수단으로 여기는 냉철한 사업가를 연기했다. 배우 염정아는 김영애와 연기하면서 그를 '연기 롤모델'로 꼽았다.
 
한편, 김영애 별세와 더불어 '이영돈 PD'의 이름도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 네티즌의 궁금증을 샀다. 김영애는 2000년 초 황토팩 사업을 시작해 2003년 한 홈쇼핑 브랜드에서만 수백억원대의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성공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7년 10월 KBS2 '소비자고발' 프로그램에서 황토팩 쇳가루 보도가 터지면서 큰 타격을 받은 것이다.
 

 

 

 

 


▲ ⓒ SBS

 
그러나 식약청 조사 결과 황토팩에 포함된 자철속은 외부에서 유입된 것이 아니라 황토 고유의 성분임이 밝혀졌다. 이영돈 PD의 보도가 잘못된 것으로 판결이 난 것이다. 그럼에도 황토팩 매출은 폭락했고, 김영애 건강 악화 소식과 이혼 소식이 이어 보도됐다.
 
이후 김영애는 이영돈PD를 고소했다. 1심에서는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으나 이영돈 PD측은 항소했고, 항소심에서 "고의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받았다. 9일 오전 김영애 별세 소식에 '이영돈PD와 황토팩 사건'이 건강 악화의 시발점이 된 것 아니냐는 네티즌들의 비판으로 떠들썩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연세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1일, 장지는 분당 메모리얼 파크다.
 

출처:문화뉴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