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마음모아 2017. 9. 19. 03:35

이른 비와 늦은 비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이른 비와 늦은 비로 비유하셨습니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스라엘의 특성과 기후를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물이 귀한 나라입니다. 강수량이 적고 토질이 석회석과 사암 등으로 형성되어 있어 지하수를 얻기도 어렵습니다. 성경의 유적지 중 비를 받아 식수로 쓰던 저수지가 많고, 성경 역사에서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이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파거나 우물 때문에 다툼이 생긴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이스라엘에서 비는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비가 내리지 않으면 생존의 위협을 받기도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으로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의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신명기 11:14~17)


이스라엘의 기후는 우기와 건기로 나뉩니다. 보통 우기는 11월부터 3월(또는 10월 중순부터 다음해 4월 중순)까지고, 건기는 5월부터 9월까지다. 환절기인 4월과 10월은 짧은 봄과 가을에 해당하는 시기입니다. 겨울철인 우기에는 비교적 자주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기 시작해 2~3주가 지나면 언덕과 들판은 푸른 초장으로 변하는데 농부들은 이때 밭을 갈고 파종합니다. 여름철인 건기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습니다. 한낮 동안에는 작열하는 열기로 인해 대기의 온도가 매우 높아져 땅이 메마르면서 건기가 지속될수록 열기를 견디지 못한 식물들은 점차 말라 죽고 산야는 엷은 적갈색으로 변해갑니다.


우기가 시작되는 10~11월 즈음에 내리는 비를 ‘이른 비’라 하고, 우기가 끝나가는 3~4월경에 내리는 비를 ‘늦은 비’라 부른다. ‘이른 비’는 늦을 경우 12월에 시작되기도 하는데 그해 농사가 풍작이 되려면 이른 비가 충분히 내려주어야 한다. 건기 동안 비가 오지 않아 땅이 메말라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때 비가 내리지 않으면 경작을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한 해 농사 지을 준비를 갖추어 놓고 이른 비를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이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작열하는 아열대의 태양열에 메마른 땅을 보며 간절히 비를 기다리는 것이다(야고보서 5:7).


늦은 비는 ‘봄비’라고도 불리는데 그야말로 단비입니다(스가랴 10:1). 농작물의 작황을 좋게 하고 곡식을 증산시키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늦은 비가 제때 오지 않는 것을 저주로 간주하기도 합니다(아모스 4:7). 이처럼 이스라엘의 농사에서 때에 맞게 내리는 이른 비와 늦은 비는 하나님의 축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비에 대한 기록들을 보면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신명기 32:2, 에스겔 34:26, 시편 65:10). 즉, 비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이스라엘의 농사는 하나님의 복음사업을 예표합니. 그리고 농사철 우기에 내리는 두 차례의 특별한 비, 즉 이른 비와 늦은 비는 하나님께서 영적인 농사를 위해 허락하시는 성령을 표상합니다.

 

 


 

 

시온의 자녀들아 …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요엘 2:23)


이른 비의 역사는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던 초림 예수님 당시,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예루살렘에 모여 열흘간 전심으로 기도한 제자들에게 오순절날 허락된 성령의 역사로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이후 초대교회는 하루에 3천 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고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사도행전 2:1~41)


곡식을 수확하는 시기에 내리는 늦은 비는 영적 추수 때인 이 시대에

 

알곡으로 비유된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 모으시는 복음사업을 위해

 

내려주실 성령의 역사를 표상합니다.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태복음 24:30~31)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시작되는 영적 추수기에 허락될 늦은 비 성령은

 

초막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나아가는 자들에게 임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천하 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스가랴 14:16~17)

 

 

 


명절 끝 날 곧 큰 날(초막절)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한복음 7:37~39)


지금은 영적 결실기인 초막절 시대로,

 

추수밭의 주인이신 엘로힘 하나님께 늦은 비 성령을 간구해야 할 때입니다.

 

 그 하나님의 약속대로 예루살렘의 실체이신 하늘 어머니께로 나아오는 자들만이

 

 늦은 비 성령의 능력을 덧입게 될 것입니다.

 

 

 

 

 

 

posted by 마음모아 2017. 9. 16. 02:00

절기라고 하면 알기 어렵운 구약의 율법정도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절기에 대해 알고나면 너무나 이해하기 쉽게 조직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기는 단지 구약시대에만 지켜젔던 계명이 아니라 신약시대의 예언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신약시대의 모형과 그림자로 보여주신 예언이기 때문에 우리가 반드시 연구해봐야 할 주제입니다.

 

자~~~ 지금부터 하나님의 절기중 3차 절기인 나팔절/대속죄일/ 초막절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세 율법에는 일년 중 3차의 7개 절기가 있는데 7절기가 3차로 조직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에는 3차 절기에 대한 기록을 [무교절과 맥추의 초실정과 수장절]이라고 하였으며(출 23장 14~17절, 34장 18~23절). 신명기에는 [무교절과 칠칠절 과 초막절]이 아고 하였고, (신 16장 16~17절) 역대하에는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이라고 하였습니다. (대하 8잘 13잘)

 

그러면 왜 3차의 절기명이 각각 다를까요?
이는 그 절기의 뜻을 표시하기 위하여 절기명이 두세 가지씩 있으나 절기명이 다르다 해서 절기가 다른 것은 아닙니다. 즉, 맥추절과 칠칠절은 같은 절기에 속한 것입니다. 그리고 수장절과 초막절은 다 같은 7월 절기에 속한 것입니다 .그리고 3차 절기라고 해서 절기가 세 가지뿐이 아니라 3차의 7개 절기가 있는데 본명과 비명을 합해서 15개 절기명 이상이 있고 모세 율법에 들지 않는 부림절이나 수전절 같은 것이 있습니다(에 9장 21절, 3절, 요 10장 22절).

정리해 보면 3차에 걸친 7개 절기의 본명은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 이 일곱 가지 절기이며 이 절기가 3차로 나위어져 있는 것입니다.

 

1차:유월절, 무교절(대표절기명:무교절)
2차:초실절, 오순절(대표 절기명:오순절)
3차: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대표 절기명:초막절)

 

 

 

 

 

 

모든 절기는 장래 일의 그림자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여호와께 십계명을 받아 백성들에게 준 것은 예수께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심으로 성령을 받아 사도들에게 부어주실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행 2장 32~33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그러나 모세가 먼저 받았던 십계명을 깨뜨리게 된 것은 백성들이 금송아지 두 우상을 만들어 섬긴 죄로 그 십계명을 깨뜨리게 한 것같이 예수께서 첫 번째 하늘 성소에 들어가시던 오순절날에 하나님께 받아 사도들에게 부어주신 성령은 교회가 부패하여 태양신을 섬기게 됨으로 그 성령은 도로 거두신 바 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한 줄기 빛만이 남아 내려오게 하신 것입니다. 기록한 바 [내 종 다윗에게 한 등불이 항상 내 앞에 있게 하리라](왕상 11장 36절)하신 것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범죄함으로 그 나라가 두 나라로 분리된 시에 하신 말씀입니다. (왕상 11장 1~13절 참고).

 

그러나 이 예언은 사도시대 이후로 성취될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교회는 심한 핍박을 받고 오랫동안 사단에게 짓밟힘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두 번째 시내산에 올라가 십계명을 받은 것은 장차 예수께서 두 번째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심으로 말세 복음사업을 위하여 1844년 10월 22일 곧 성력 7월 10일 대속죄일에 하늘 성소에 들어가실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3차 7개 절기는 그 속에 진리가 무궁한 것이며 모세 때로부터 세상 마지막까지 이루어질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3차 절기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시대를 표상하사 각각 그의 권능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첫째는 무교절이니 성부시대라고 할 수 있는바, 여호와께서 친히 행사하심으로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내셨으며,

 

둘째는 맥추절인 바 곧 성자시대라고 하니, 예수께서는 맥추의 처음 익은 곡식이 되어 잠자는 자의 처음 익은 열매로 부활하시고 (고전 15장 20절)승천하사 하늘 성소에 들어가심으로 이른 비 성령을 내리시어 초대교회 시대의 맥추의 농작을 다 거두셨으며,

 

셋째는 초막절이니 성령시대라고 할 수 있는 바. 이는 가을 농작의 마지막 거두는 추수 때를 가리키며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알곡을 다 하늘 창고에 거두어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절기는 현재까지 다 이루어졌으나 마지막 절기가 한 가지 남아 있으니 이는 초막절 입니다. 이 절기에는 예수 강림하실 기일 선포를 받은 후에 예수 강림운동이 있을 것을 표상한 것입니다. 옛날부터 지켜 내려오던 초막절의 마지막 성취가 마지막 예수 강림운동인 것입니다.

posted by 마음모아 2017. 7. 2. 01:47

초막절을 지키라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절기 가운데 가을 절기를 대표하는 초막절은 일년 중 맨 마지막에 들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초막절을 독특한 의식으로 치릅니다. 초막(草幕)이라는 말처럼 그들은 산과 들에서 종려나무 가지와 은매화라 불리는 화석류나무 가지, 산버드나무 가지 등을 가져다가 성전 마당 또는 집 마당, 집 지붕 위에 두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온 후 40년 광야 생활 동안 장막 지었던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 절기 동안 이스라엘 민족은 각종 나뭇가지로 꾸며진 초막에 거하며 불우한 이웃을 돌보고 기쁨으로 절기를 보냈습니다.


이러한 초막절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두 번째 십계명을 받아 내려온 후 십계명인 언약의 돌판을 안치하기 위해 성막을 지었던 것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성력 7월 15일부터 22일까지 7일 동안 성막을 짓기 위해 금, 은, 포목과 목재 등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왔습니다. 모세는 이 모든 재료를 모아 재능 봉사자들에게 성막을 짓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 지을 재료를 모았던 날을 기념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대로 지키게 하기 위하여 초막절을 제정해주셨습니다. 아직도 유대인들은 초막절이 오면 각종 나뭇가지로 집 안팎을 꾸미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종 나뭇가지만 초막절을 지키는 것은 초막절이 가지고 있는 이면을 잘 모르고 지키는 것입니다. 초막절은 그저 초막을 짓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은 참된 의미를 되새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그들이 이 말을 하였은즉 볼지어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니 그 불이 그들을 사르리라 (예레미야 5:14)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나무로 표현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초막절에 각종 나뭇가지를 모은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은다는 뜻입니다. 또한 초막절의 유래 가운데 모세가 성전 지을 재료를 모았던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요한계시록 3:12)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거룩한 백성을 일컬어 성전의 기둥이라고 하신 것은 우리들이 곧 성전 재료이며 초막절의 성전 재료를 모았던 것 또한 성전 재료인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을 것에 대한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즉 초막절은 단순히 나뭇가지로 지키는 절기가 아닌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는 전도대회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모른 채 산과 들에서 나뭇가지를 가져다 지키는 초막절은 마치 서과피지(西瓜皮舐)에 불과합니다.


또한 초막절이 중요한 것은 이 절기 속에 담긴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초막절을 지키는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축복해주셨습니다.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천하 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창일함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 (스가랴 14:16~19)


초막절을 지키는 자들에게만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비’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한복음 7:2, 37~39)

 

 


 

 

스가랴 선지자는 ‘초막절을 지키는 자에게 비를 내려주신다’고 기록했고,

 

예수님께서는 ‘초막절을 지키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초막절을 지키는 자만이 이 시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초막절도 지키지 않으면서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자들은

 

과연 누구에게 어떤 영을 받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초막절은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더없이 중요한 절기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posted by 마음모아 2017. 6. 29. 01:12

엄숙한 절기, 대속죄일


대속죄일은 자신이 지었던 죄를 회개하며
경건하게 보내야 하는 하나님의 규례다.

 


유대인에게 있어 가장 엄숙한 절기를 말하자면 속죄일을 들 수 있습니다. 성력 에다님월(7월) 10일 속죄일(욤 키푸르)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두 번째 십계명을 받아서 내려온 날이다. 양력으로는 9~10월경에 해당합니다.

 

속죄 염소[출처: 윌리엄 홀먼 헌트 作, 1854~5]


첫 번째 받았던 십계명 돌판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함으로 진노하여 깨뜨려버린 후 하나님께서는 노심초사 하나님의 용서만을 바라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모세를 부르셨습니다(출애굽기 32:1~35). 첫 번째 십계명 돌판을 깨뜨린 지 40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 네가 깨뜨린 바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아침 전에 예비하고 아침에 시내산에 올라와 산꼭대기에서 내게 보이되 (출애굽기 34:1~2)
 

그날이 성력 6월 1일이었습니다. 모세는 40일 동안 하나님과 함께하며 두 번째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모세가 내려오기로 한 열흘 전 성력 7월 1일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을 불며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경건한 몸과 마음으로 모세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두 번째 돌판을 들고 내려오던 이날을 기념해 하나님께서는 속죄일로 정해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레위기 23:26~28)

 

 


 

속죄일은 대제사장에게는 아주 특별한 날입니. 일년에 딱 하루 ‘회개의 10일’이라 불리는 이날에 대제사장만이 행하는 의식이 있습니다. 바로 지성소의 출입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안치된 지성소는 성소의 두 번째 장막으로 그 누구도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백성들의 죄사함을 위해 잡은 염소의 피를 언약궤 덮개인 속죄소에 뿌렸습니다.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를 행하고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히브리서 9:3~7)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해 동안 지었던 모든 죄를 이날에 와서야 온전히 사함받을 수 있었습니. 속죄라는 의식은 하나님과 멀어졌던 백성들의 마음을 다시금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엮어주는 예식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더없이 엄숙하며 경건한 몸과 마음으로 이날을 기념해 왔습니다. 이와 함께 속죄일에는 성소에 뿌렸던 모든 피를 모아 ‘아사셀’이라는 이름의 염소에게 지우고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로 보내는 의식이 있다습니.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권속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 두 염소를 취하여 회막문 여호와 앞에 두고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레위기 16:6~10)
 

이러한 예식은 성전 되신 예수님으로 성취됩니다. 즉 일상생활에서 범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성소로 임시 옮겨졌다가 속죄일을 통해 아사셀 수염소에게 그 죄를 안수해 광야 무인지경으로 보내 죽게 한 것같이, 평상시에 지었던 우리들의 죄가 성소로 표상된 그리스도에게로 임시 옮겨졌다가 속죄일을 통해 사단 마귀에게로 옮겨진 후 사단은 최종적으로 죄를 짊어진 채 광야 무인지경 같은 지옥에서 고난받으며 멸망할 것을 대속죄일 절기를 통해 그 이치를 설명해주고 있습니. 그러므로 대속죄일은 죄사함을 바라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일년에 한 번 꼭 지켜야 하는 예식입니.
 

이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이날에 누구든지 아무 일이나 하는 자는 내가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니 너희는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레위기 23:29~31)
 

대속죄일은 자신이 지었던 죄를 생각하며 회개의 마음으로 경건하게 보내야 하는 하나님의 규례입니다.

 

 

posted by 마음모아 2017. 6. 27. 23:39

나팔을 불어 기념하는 나팔절


이스라엘 민족들이 지켰던 가을절기의 시작을 알렸던 나팔절은
안도와 기쁨, 회개 등의 다양한 감정이 섞여 있습니다.

 

 


고대 시대 나팔은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특히 전쟁에 있어 지휘와 명령 전달의 도구였던 나팔의 역할은 가장 중요했습니다. 통신 장비가 구비되어 있지 않았던 시기 공격과 후퇴, 출발, 멈춤, 대오 정렬, 무기 준비, 발사 등이 모두 나팔소리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외에도 성경에서는 더 다양한 나팔의 쓰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지파가 이동할 때 나팔을 불었습니다. 각 지파들의 소집과 해산 등이 나팔로 가능했으며 기쁠 때도 나팔을 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이유로 부는 나팔 중 성경에서 가장 중요시했던 나팔은 성력 7월 1일 나팔절에 불었던 나팔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지켰던 가을절기의 시작을 알렸던 나팔절은 안도와 기쁨, 회개 등의 다양한 감정이 섞여 있습니다.

 

 


 

나팔절의 의미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이집트를 나온 후 처음 십계명을 받아온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해주신 십계명의 두 돌판을 들고 내려오던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들의 배도를 목격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받기 위해 경건한 몸과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으리라 여겼던 모세는 백성들의 우상숭배를 보고 그 자리에서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던져 깨뜨려버렸습니다. 그날 이스라엘 백성들 중 삼천 명가량이 죽었습니다.


그 후 모세는 백성들의 죄사함을 위해 진과 멀리 떨어진 곳에 회막을 치고 매일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날의 죄로 하나님께 버려질까 염려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회막에서 기도하는 모세를 보며 자신들의 죄를 뉘우쳤습니다. 귀걸이며 목걸이를 볼 때마다 금송아지를 만들며 휘청거리던 지난날을 떠올렸습니다. 너무도 어리석었던 그때를 돌아보며 몸에 지니고 있던 단장품들을 모두 제했습니다. 그들은 하루라도 빨리 하나님께서 노를 거두시기만을 바랐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매일이 더 간절했습니다.


그렇게 40일이 흘렀습니다. 엄숙하고 조용한 가운데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다시금 십계명을 허락해주신 것입니다. 백성들은 그제야 안도했습니다. 그리고 기뻤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축복을 받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즐거움으로 가득했습니다. 이제 열흘 후면 모세가 십계명을 가지고 내려올 것입니다. 백성들은 처음의 잘못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그날을 기억하고 회개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려 나팔을 불었습니. 길게 부는 나팔은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의미였습니다. 나팔을 불며 모세를 기다리던 백성들은 우상에 빠지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이러한 모세의 행적을 따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팔절을 제정해주셨습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를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레위기 23: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레위기 23:23~24)


나팔절은 가을절기의 대표되는 초막절 속에 들어갑니다. 초막절 안에는 나팔절과 대속죄일, 초막절이 편성돼 있습니. 날짜도 성력 7월 한 달 안에 모두 들어 있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의 시작인 나팔절이 되면 예루살렘을 방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초막절을 맞아 예루살렘에서 전도하신 것은 초막절뿐 아니라 초막절에 내포되어 있는 나팔절과 대속죄일도 함께 지키셨음을 알 수 있습니.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한복음 7:2, 14, 37)


나팔절은 하나님께서 제정해주신 일곱 절기 가운데 다섯 번째 절기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절기입니다.

 

 

 

 

 

 

 

 

posted by 마음모아 2017. 5. 9. 23:50

유월절의 비밀......제 2유월절

 

 

 

누가복음 22장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운명하시기 전날 밤,

이 유월절을 제자들과 함께 지키길 원하고 원한다고 말씀하신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월절이 무엇이기에 예수님께서 그토록 지키기를 간절히 원하셨을까요.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15, 19~20)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가리켜 당신의 살과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을 새 언약이라고 하셨습니다.

약속을 남기신 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음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유언을 남기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한복음 6:53~54)

 

 


영원한 생명, 이것을 인류에게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양의 실체가 되셔서 희생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유월절의 비밀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게 된 사람들을 위해

허락해 주신 절기가 바로 제 2유월절 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는 모두 1년에 한번씩 지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유월절만 일년에 두 번 지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제2유월절에 대한 말씀은 민수기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때에 사람의 시체로 인하여 부정케 되어서 유월절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당일에 모세와 아론 앞에 이르러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사람의 시체로 인하여 부정케 되었거니와 우리를 금지하여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정기에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지 못하게 하심은 어찜이니이까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기다리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어떻게 명하시는지 내가 들으리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나 너희 후손 중에 시체로 인하여 부정케 되든지 먼 여행 중에 있든지 할찌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되 이월 십사일 해 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어린 양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아울러 먹을 것이요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 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사람이 정결도 하고 여행 중에도 있지 아니하면서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니 이런 사람은 그 정기에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지 아니하였은즉 그 죄를 당할찌며(
민수기 9장 6-13)

 

 


제 2유월절은 성력 2월 14일 저녁

양력으로 2017년 5월 10일 바로 내일 저녁에 일제히 거행됩니다. 

이 유월절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죄사함과 영생의 축복을 값없이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원하고 원하셨던 영원한 생명의 약속이 담긴 유월절의 가치를 알고 지켜서 영생의 축복 모두 받으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마음모아 2017. 5. 6. 00:30

 

우리는 이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하늘에 있었던 천사 였다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욥 38:1~7, 잠  7:22~31)

 

 

 

 

 

 

 

하늘의 천사였던 우리가 하늘에서 쫒겨나

이땅에 내려와 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대적했던

 

 우리의 교만한 마음 때문이였습니다.(사 14:12~15)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진실로 통회하며 회개하는 겸손한 자를 찾으시 구원며 해 주십니다.

 

 

 

이사야 57장 15절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소성케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시며 그영혼을 소성케하시며,

겸손한 자에게 생명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겸손한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누가복음 18장 9~14절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씨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바로 누가복음에 비유로 기록되어 있는 세리와 같이

자신의 죄를 알고 통회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겸손한 자들만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왜냐구요?

 

 

그건 바로 겸손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앞서 하나님을 더 잘 섬기려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더하거나 빼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천국에 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재앙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계시록 22:18~19)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겸손한 자들은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자들입니다.

 

 

 

 

 

 

 

스바냐 2:1~3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찌어다 모일찌어다 명령이 시행되기 전 광음이겨같이 날아 지나가기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하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 찌어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로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규례대로 행하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겸손한 자들이며 

 

 

이런 겸손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계명을 그  규례대로 올바로 지키고 있는

성경에 예언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교회,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시는

 

유일한 교회입니다.

 

 

 

 

 

 

 

 

posted by 마음모아 2017. 4. 28. 01:41

승천일과 오순절(초실절)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복음의 행적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은 예수님의 승천 그리고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시작으로 전개됩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한때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나갔던 그들이 다시금 열정을 다해 예수님의 이름을 전파했던 이유는 사도행전 첫 장을 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승천일

 

 

 

 

 

예수님께서는 무교절에 십자가에 운명하셨다가 안식 후 첫날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지 40일 만에 사도들과 함께한 감람산에서 승천하셨습니다.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부활하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사도행전 1:2~9)

 


승천일은 바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날을 기념하는 날입니. 승천은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으로 보이신 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의 최종적인 소망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40일 동안 사도들의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하시며 천국복음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예수님의 마지막 교육을 통해 믿음을 곧추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순절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지 40일 만에 승천하시고,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성도들은 120명이었습니다. 이후 성도들은 10일 동안 간절히 성령을 간구하는 기도를 드린 끝에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령을 받게 됩니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기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1~4)

 


오순절은 바로 성령 강림을 기념하는 날입니. 부활절로부터 정확히 50일째 되는 날이며, 2천 년 전 이날, 사도들은 성령을 받고 천하 각국 사람들에게 담대히 예수님을 전파해 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하루에도 3천 명, 5천 명씩 많은 영혼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교회에 큰 부흥이 일어나고, 방언의 능력으로 이방인들에게까지 복음이 전파되면서 그리스도교는 일대 전기를 맞았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매년 유월절과 무교절, 부활절(무교절 후 안식 후 첫날)을 지켰으며, 부활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에는 그리스도의 성령 강림을 기념하는 오순절을 지켰습니.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안식 후 첫날(부활절)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치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행선하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사도행전 20:16)

 


사도행전 20장에 나타난 절기의 배열을 보면, 맨 먼저 무교절이 기록되었고, 다음에는 부활절이 기록되었고, 다음에는 오순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의 절기를 지켰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유하려 함은 (고린도전서 16:8)

 


사도 바울이 이방지역인 에베소에 체류하면서 오순절까지는 그곳에 머물러 있겠다고 한 내용을 보더라도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이방지역에서도 오순절을 지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승천일과 오순절

 

 

 

 

이러한 신약의 역사는 구약시대부터 예언되어 있었던 것입니. 유월절을 통해 이집트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교절에 홍해를 건너 상륙한 날(안식일 이튿날)로부터 40일째 되는 3월 1일, 시내산 앞에 장막을 쳤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뵈었는데, 이는 장차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것을 예표로써 보여주신 입니다.

 


10일 뒤에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다시 시내산에 올랐는데, 이날이 칠칠절, 신약의 명칭으로는 오순절인 것입니다. 이날은 홍해를 건너 상륙한 날로부터 정확하게 50일째 되는 이었습니다.

 


안식일 이튿날(초실절)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제 칠 안식일 이튿날(다음 날)까지 합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 (레위기 23:15~16)

 


칠칠절은 초실절(신약의 부활절로, 무교절 후 안식일 이튿날)로부터 7 안식일 다음 날에 지키는 절기로서, ‘안식일을 일곱 번 지나서 지키는 절기’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49일째 되는 다음 날이 되며, 50일 즉 10일을 다섯 차례 계수하는 의미에서 오순절(五旬節)이라 이름한 것입니다.

 

 


 

출처:패스티브

 

 

posted by 마음모아 2017. 4. 19. 23:40

아버지의 유언


죽은 이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오래도록 기억되기 마련입니다.
그가 부모님이라면 더욱 뼈저리게 느껴 집니다.
 부모님의 유언은 불효한 청개구리조차 따르게 만드는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마지막 부탁은 무슨 일이 있어도, 죽는 한이 있어도 들어주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유대인들이 생각하기에는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을 모독한 거짓 선지자의 최후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보여준 과시였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이에게는 실패한 인생으로 비쳐졌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로마인들에게는 흉악범의 최후, 혹은 많은 유대인 중 그저 한 사람의 최후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 예수님의 죽음은 구원의 완성이었습니다. 인류를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고결한 선물인 것입니다.

 

 

체포와 심문

 

예수님께서 재판에 회부된 것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마치고 난 직후였습니다. 제자 유다의 배신은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몬 결정적 원인이기도 했지만 매우 중요한 예언을 이루는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밤새 산헤드린(유대의 의회 겸 법원)에서 심문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위법이었습니다. 해가 저문 후에는 재판을 진행해서는 안 된다는 법률에 반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수욕을 당하시며 재판을 받는 동안 제자들은 도망쳤고 수제자였던 베드로마저 예수님을 외면했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의 심문 끝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사형하기로 결의했습니다.

 

 

 


로마의 속국이었던 유대는 사형 집행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는 로마의 힘을 빌려야 했습니다. 당시 유대에는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명으로 본디오 빌라도 총독이 부임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빌라도 관저로 끌고 갔습니다. 2차 심문이 어어졌고,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범죄 사실을 발견할 수 없었지만 유대인들에게 결정권을 넘겼습니다. 유대인들의 요구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사형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혐의는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라 한 죄, 사람으로서 하나님이라 한 죄, 이를테면 신성모독죄에 해당했습니다.

 

 

사형과 운명

 

재판이 마치자마자 즉시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을 채찍질하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가형의 첫 번째 순서였던 것입니다. 로마 군병들이 휘두르는 채찍에는 쇳조각이나 동물의 뼛조각이 달려 있었는데, 죄수가 창상을 입도록 고안된 것이었습니다. 창상의 출혈로 십자가에서 빨리 죽음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기 때문에 채찍질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살점이 떨어져 나오는 것은 물론, 때로는 뼈가 드러나거나 내장이 쏟아져 나올 만큼의 깊은 상처를 입혔다.


군병들은 채찍질로 예수님의 온몸을 난도질한 후, 가시로 만든 관을 머리에 씌우고 왕들이 입는 홍포를 입히고 손에 갈대를 들게 했습니다. 그러고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희롱했다. 어떤 이는 예수님께 침을 뱉고 어떤 이는 갈대를 빼앗아 머리를 때리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군병들과 유대인들의 조롱과 멸시 속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해골)라 불리는 언덕으로 끌려가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기 전, 군병들은 몰약을 탄 포도주를 예수님께 주려 했습니다.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마취제였지만 예수님은 사양하셨습니다.


본격적인 십자가형이 시작됐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고정시킨 후 굵고 긴 못을 예수님의 양손과 발에 사정없이 내리쳤다. 금요일 오전 아홉 시경의 일이었습니다.


이어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아 나누어 가졌습니다. 구약성경에 예언된 그대로였습니다(시편 22:18).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죄패가 붙어 있었고 양편에는 두 강도가 나란히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십자가형은 죽음 직전까지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형벌입니다. 사형수들은 십자가에 달린 채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못이 관통한 손과 발에서는 자연히 심한 출혈이 뒤따랐습니다. 때로는 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양손이 찢어지기도 했습니다. 출혈은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극심한 두통과 고열을 동반합니다.


숨 쉬는 것조차 힘겹습니다. 축 늘어진 몸을 가다듬어 숨을 들이마시려면 다리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순간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엄습해옵니다. 이 일은 숨이 붙어 있는 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복됩니다. 사형수들은 이렇게 창상, 출혈, 두통, 고열, 탈진, 배고픔, 갈증, 한기 등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혼절했다 깨어나기를 반복합니다. 그렇게 극한의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것입니다.


정오쯤 되자 온 세상이 어둠으로 뒤덮였습니다. 어둠은 세 시간 동안 지속됐습니다. 오후 세 시경,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고 땅이 진동했습니다. 예수님의 운명을 암시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빨리 사형수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수습해달라고 재촉했습니다. 다리를 꺾는 이유는 숨을 쉬기 위해 본능적으로 다리를 지탱하며 안간힘을 쓰는 사형수들이 빨리 숨을 멎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안락사였습니다. 로마 군병들은 두 강도의 다리를 꺾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미 운명하신 상태였기 때문에 한 군병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또 다른 예언이 성취되는 순간이었습니다(출애굽기 12:46, 고린도전서 5:7, 요한복음 19:32~37).

 

유월절과 유언

 

“다 이루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이루셨다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유언은 전날 밤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 석상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날 저녁 하셨던 말씀이 유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날은 무교절의 첫날, 유월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특별한 심부름을 시키셨습니다. 유월절 만찬을 먹을 객실을 준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마가의 소유로 전해지는 큰 다락방이 준비되었고 저녁이 되어 열두 제자와 함께 자리하셨습니다.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3년에 걸쳐 완성한 벽화 ‘최후의 만찬’은 이 일을 모티브로 한 것입니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누가복음 22:15)


예수님께서는 떡을 들어 축복 기도를 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받아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포도주가 담긴 잔을 들어 축복 기도를 하시고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하신 말씀에 대한 약속 이행이었다(요한복음 6:54).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써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만 해도 성력 1월 14일 유월절이 되면 모세의 율법대로 일 년 된 어린양을 잡아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유월절 양의 실체이신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써 당신의 살과 피에 참예하는 새 율법을 세워주셨습니다. 인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그 처절한 고통을 당하시며 보혈을 흘리신 희생의 결정체가 바로 유월절입니다.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 유언한 자가 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9:16~22)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고난을 받기 전, 죄 사함과 영생이 약속된 새 언약의 유월절을 선포하시며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십자가에서 피 흘려 희생하심으로 유언의 효력을 발생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최종적으로 이루신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새 언약 유월절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과 신비 그리고 위대하신 사랑과 희생이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유언은 자녀들에게 있어 사무치도록 뼈저린 것입니다.

 

출처:패스티브

 

posted by 마음모아 2017. 4. 13. 23:44

두 개의 율법


성경에서 하나님의 율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구약, 즉 옛 언약은 모세의 율법이라 부르고
신약, 즉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율법이라 부릅니다.

 

 

 

 

 

  십계명을 소개하는 모세[필립 뉴 샹페뉴作_1663년]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 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의 말씀을 귀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에 대한 이유를 굳이 들라면 성경에 기록된 이 말씀 때문입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 22:18~19)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어떤 말씀도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럴진대 하물며 사람이 그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하나님의 말씀들이 모두 소중하겠지만 그중에 특히 위의 말씀처럼 절대 가감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 ‘하나님의 율법’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인 율법, 신앙생활의 지표가 되는 율법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그들은 옷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이사야 51:7~8)

 

 

 


하나님의 구원이 세세에 미치는 자들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는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이 있는 백성’이라고 기록하였습다. 하나님의 율법을 마음에 둔 자는 당연히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만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 율법을 소홀히 여기는 자에게 주시는 결과는 처참합니다.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잠언 28:9)


하나님의 율법을 듣지 않는 자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듣지 않고 지키지 않는 자는 기도조차 가증하다고 하셨습니. 그들의 기도가 가증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은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들어주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입니. 하나님께서 기도도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과연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와 같이 구원받기를 원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자’라는 조건이 주어집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요한계시록 14:12)


요한이 계시를 통해 본 성도, 즉 거룩한 무리는 구원받을 성도들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율법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이 없어질지라도 결코 하나님의 율법은 글자 획수 하나조차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신다고 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태복음 5:18)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율법이 사실은 두 가지 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려주신 계명’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성경에는 분명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율법이 있고 그리스도께서 세워주신 율법이 존재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고린도전서 9:20~21)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며 사도의 권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 또한 사도로서 복음 전하는 것은 부득불 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바울이 행했던 전도 방식은 실로 눈물겹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지만 유대인들을 전도하기 위해 유대인처럼 행동했으며,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전도하기 위해 율법 아래 있는 자처럼 행동했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위의 말씀에서 우리는 바울의 열정 어린 전도에 대해 배울 수 있지만 이 가운데 율법에 대한 중요한 힌트도 얻을 수 있습다.


바울이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한 것은 모세의 율법입니다. 그런데 뒤에서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다’고 했습니다. 만약 율법이 한 가지였다면 이 말씀은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합니다. 바울의 편지 가운데서도 알 수 있듯 분명 율법은 모세의 율법과 그리스도의 율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모세의 율법 외에 또 다른 율법을 주신 것일까요.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가는 것이니라 (히브리서 8:7~8, 13)


첫 언약이란 옛 언약 즉, 구약을 말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받았던 그 언약입니다. 첫 언약이 흠이 있어 결국 하나님께서는 둘째 것인 새 언약을 주셨습니다. 율법 자체는 완전하지만 우리가 완전하게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들을 위해 다시 세워주신 율법이 바로 그리스도의 율법입니다. 결국 첫 것인 옛 언약은 낡아지고 그리스도의 율법인 새 약속은 세워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옛 언약이 폐해지고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히브리서 7:11~12)


모세 때 제사 형태는 짐승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죄를 지은 백성은 짐승을 가지고 제사장 아론에게 갔고 아론은 그것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백성의 죄를 속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살렘 왕이자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멜기세덱이 행했던 대로 떡과 포도주로써 새 언약을 세워주셨습니다. 율법을 변역해주신 것입니다. 즉 모세의 율법을 그리스도의 율법으로, 옛 언약을 새 언약으로 바꾸어주신 것이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마태복음 5:17)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다시 세워주시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은 결코 없어진 것이 아닙니. 모세의 율법이 그리스도의 율법으로 바뀐 것일 뿐입니다. 이 같은 진리를 잘 깨닫고 있었던 바울은 율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로마서 3:31)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제대로 알고 지켜야 합니. 단순히 율법이 폐지됐다고 생각한다면 구원과는 영원히 요원해지고 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