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마음모아 2017. 8. 28. 01:00


성경에 오시기로 예언된 마지막 아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첫 사람, 아담은 이렇게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또 다른 아담이 있다고 말합니다.


아담은 히브리어로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아담을 만드시고 영혼을 그 속에 넣자 비로소 아담은 생명을 가진 존재로 탄생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2:7)


이렇게 창조된 아담은 그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하와와 함께 에덴동산에 거했습니다. 후에 아담은 930세라는 나이로 죽기까지 가인과 아벨 등 많은 자녀를 낳았다고 구약성경 창세기는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담의 일생이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는 이러한 아담을 두고 두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린도전서 15:45)


창조된 아담은 분명 한 사람인데 성경에서는 첫 사람 아담이 있고 마지막 아담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 가운데 두 아담은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며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하나님께서 흙으로 육체를 만들어 그 속에 영혼을 불어 넣어 생명을 가진 존재로 탄생시킨 아담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아담은 누구일까요? 마지막 아담에 대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힌트는 ‘살려주는 영’이라는 점입니다. 이로 보건대 마지막 아담은 죽어가는 인류를 살려주기 위해 오시는 구원자임을 알 수 있습니.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담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로마서 5:14)


아담을 오실 자에 대한 표상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오실 자’는 성경 맨 마지막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20)

 


‘오실 자’는 장차 오실 예수님 즉 재림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로마서에서 ‘오실 자’를 표상하는 아담은 바로 재림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의 마지막 아담 또한 마지막에 등장하시는 재림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살려주는 영’으로 오시는 마지막 아담인 재림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 인류를 살려주실까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한복음 6:54)


마지막 아담인 재림 예수님께서 인류에게 생명을 주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신다고 하셨습니. 과연 예수님의 살과 피는 어떻게 먹고 마신단 말일까요?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마태복음 26:17~19)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6~28)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의 떡을 당신의 살로, 유월절의 포도주를 당신의 피로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살려주는 영’인 마지막 아담이 인류에게 생명을 주는 방법입니.

 

 


마지막 아담의 예언 그대로 생명의 약속이 담긴 유월절을

 

이 마지막 시대에 가지고 오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안상홍님입니다.

 

마지막날에 우리를 살려주시기 위해 1900년동안이나 잃어버렸던 새언약 유월절을

 

다시 찾아주신 안상홍님은

 

속히 오시리라 말씀셨던 그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이 땅에 두번째 육신으로 오신 재림 예수님입니다.

 

 

 

 

 


 

posted by 마음모아 2017. 7. 22. 01:31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반드시 지옥에 가게 될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믿는다면 그 누구도 이와 같은 성경의 가르침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교회는 어떤가요? 예수님이 아닌 안상홍 씨를 믿고 있으니 지옥 초대는 따놓은 당상 아닙니까?"

 

하나님의 교회를 비방하는 이러한 하피모의 주장에 대하여 성경을 통해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를 하나하나 밝혀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 (마가복음 9:43~49)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곳.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고통을 당하는 그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상 누군가는 분명 지옥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옥은 과연 누가 가게 될까요?
 


성경에는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말씀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사도행전 4:11~12)


그런데 같은 성경 안에 다음과 같은 말씀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사야 43:10~11)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는 ‘나의 전에도 나의 후에도 나 여호와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고 말씀하시고, 사도 베드로를 통해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고 천하에 구원을 얻을 이름은 오직 예수’라고 하시니 어떻게 한 성경 안에 이렇게 모순되는 기록이 공존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알지 못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부정하였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바울을 비롯한 신약시대 사도들 모두가 성부시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또 여호와 하나님을 올곧게 믿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의 방식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임하시기 전에는 오직 ‘여호와’의 이름으로만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등장 이후부터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아닌 ‘예수’의 이름으로만 구원의 역사가 펼쳐졌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시대별로 구원자의 이름을 달리하신 이유는 사단의 세력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려야 할 영광을 탈취하지 못하게 하려는 구원의 섭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아담으로부터 세상 끝날까지 6천 년의 기나긴 구속의 기간을 설정하셨습니다. 그리고 6천 년 구속의 역사를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시대로 구분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통하여 구원의 뜻을 알리시기 위해 시대마다 이름을 달리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부시대에는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성자시대에는 ‘예수’라는 이름으로 구원의 역사를 펼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이러한 구원의 섭리를 깨달았던 마태 역시 시대별로 구원자의 이름이 있다는 내용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18~20)
 

마태복음 28장의 내용을 보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성부시대의 아버지인 ‘여호와’, 성자시대의 아들인 ‘예수’의 이름이 있듯이 성령시대에 등장하시는 구원자의 ‘이름’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가르침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모두가 성령시대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본다면 시대별로 ‘여호와’와 ‘예수’의 이름을 주셨듯이 이 성령시대에도 성령의 ‘이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이름’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만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고 ‘예수’의 이름을 배척하였던 유대인들의 오류가 현 시대에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지옥으로 떨어진 사람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세아 4:6)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세아 6:3~6)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힘써 아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가까이 곁에 두고도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면 구원을 받지 못하고 결국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2천 년 전, 예수님의 상황이 꼭 그러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굳건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어서 예수님을 핍박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눈앞에 두고도 하나님을 향해 돌팔매질을 했던 것은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자신들의 지식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선하였기 때문입니다.
 

‘설마 하나님이 육체를 입고 사람처럼 이렇게 오시겠는가!’
 
‘저렇게 빈약하고 볼품없는 자가 어찌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시고 갈릴리 나사렛에서 복음 활동을 하시며 성경을 통해 당신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만약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보고 하나님을 알고자 하였더라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임재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해 분명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돌팔매질을 했고 침을 뱉었으며 채찍을 내리치고 희롱하고 조롱하며 결국 십자가에 못박는 끔찍한 일을 자행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예언대로 임하셨지만 그들은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지금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피하지 못한 채 고통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사진출처[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성령시대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새 이름’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요한계시록 3:1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요한계시록 2:16~17)
 

요한계시록 2장에 기록된 흰 돌은 예수님을 표상하고 있습니다(베드로전서 2:4). 그리고 요한계시록 3장에서 말씀하신 ‘나’라는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때가 되면 예수님의 ‘새 이름’을 가진 성령시대의 구원자가 등장할 것이라는 예언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다’고 하셨으니 예수님의 시대와 같이 시대별 구원자의 이름을 ‘받는 자’가 있고 ‘받지 못할 자’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시대를 사는 오늘, 예수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굳이 하나님을 믿지 않더라도 ‘예수’라는 이름은 상식과도 같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령시대 예수님의 ‘새 이름’이 있고, 그 이름이 ‘성령의 이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계시록 2:16, 3:12, 마태복음 28:18~20).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은 분명히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고 하셨습니다(이사야 52:6). 

 

 
두 번째 임하시는 예수님의 ‘새 이름’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8)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두 번째 나타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오실 때는 어떠한 모습으로 오실까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무지한 사람들은 이 말씀을 두고 영으로 임하시는 예수님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영으로 임하시는 예수님을 ‘한 번’, ‘두 번’이라는 수로써 측정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무지한 주장과 생각보다는 성경을 통해서 중심을 삼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체를 가지고 임하셨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당시 예수님에게 ‘세상 끝에 오시는 주의 임하심’에 대하여 질문하였습니다(마태복음 24:3). 그 답으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태복음 24:26~27)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재림 예수님)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누가복음 17:23~25)
 

세상 끝에 등장하시는 재림 예수님은 먼저 많은 고난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영으로 임하신다면 고난을 당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느 누가 감히 권능의 하나님을 능욕하여 고난을 당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씀은 초림 때와 같이 재림 그리스도께서도 육체를 가지고 임하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로 인해 고난을 당하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기다리는 모든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두 번째 등장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히브리서 9:28). 이 말씀을 다시 정리하자면 두 번째 등장하지 않으신다면 구원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모두가 지옥에 가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임하시게 되는 재림 그리스도께서는 어떠한 방법으로 구원을 주실까요?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인 유월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요한복음 6:53)
 

내 때가 가까웠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7~19, 26~28)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살로 표상된 떡을 먹고 예수님의 피로 표상된 포도주를 마심으로써 생명을 얻는 절기는 오직 유월절뿐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사진출처[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하지만 유월절은 사단 마귀의 계략에 의해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를 거쳐 완전히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데 유월절이 없어졌다면 그 누가 죄 사함과 영생을 받고 구원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렸던 유월절을 다시 찾고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두 번째 등장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히브리서 9:28).

 
현 시대, 지구촌 모든 교회 중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는 하나님의교회가 유일합니다. 그리고 유월절을 비롯하여 초대교회 모든 절기를 회복하시어 하나님의교회를 세워주신 분이 바로 안상홍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안상홍님이 바로 성령시대 새 이름으로 오시는 재림 그리스도가 아니시겠습니까?
 


지옥으로의 초대, 과연 누가 당할 것인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초림하셨을 때, 유대인들이 배운 지식은 오직 ‘여호와’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자들은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그 결과, 지금 이들은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고 있습니다.


성령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성자시대의 지식을 배운 사람들은 오직 구원자의 이름이 ‘예수’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성령시대를 살면서도 성령 하나님의 이름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니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알려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이름에서 멈춰버린 것입니다(마태복음 28:18~20). 만약 이들이 유대인들과 똑같은 오류를 범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들의 결과 역시도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신체가 절단되는 고통보다도 더 큰 고통, 인생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 바로 불로 당하는 고통이라고 합니다. 그 끔직한 불의 고통을 죄로 인해 영원토록 당하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이런 지옥으로의 초대를 그 누가 달갑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모든 사람들이 천국에 가는 것.

 

그것이 성부시대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성자시대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마지막 성령시대에는 ‘안상홍’님의 이름으로 오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소망이십니다.

 

출처:패스티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