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마음모아 2017. 4. 19. 23:40

아버지의 유언


죽은 이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오래도록 기억되기 마련입니다.
그가 부모님이라면 더욱 뼈저리게 느껴 집니다.
 부모님의 유언은 불효한 청개구리조차 따르게 만드는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마지막 부탁은 무슨 일이 있어도, 죽는 한이 있어도 들어주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유대인들이 생각하기에는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을 모독한 거짓 선지자의 최후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보여준 과시였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이에게는 실패한 인생으로 비쳐졌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로마인들에게는 흉악범의 최후, 혹은 많은 유대인 중 그저 한 사람의 최후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 예수님의 죽음은 구원의 완성이었습니다. 인류를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고결한 선물인 것입니다.

 

 

체포와 심문

 

예수님께서 재판에 회부된 것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마치고 난 직후였습니다. 제자 유다의 배신은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몬 결정적 원인이기도 했지만 매우 중요한 예언을 이루는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밤새 산헤드린(유대의 의회 겸 법원)에서 심문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위법이었습니다. 해가 저문 후에는 재판을 진행해서는 안 된다는 법률에 반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수욕을 당하시며 재판을 받는 동안 제자들은 도망쳤고 수제자였던 베드로마저 예수님을 외면했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의 심문 끝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사형하기로 결의했습니다.

 

 

 


로마의 속국이었던 유대는 사형 집행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는 로마의 힘을 빌려야 했습니다. 당시 유대에는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명으로 본디오 빌라도 총독이 부임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빌라도 관저로 끌고 갔습니다. 2차 심문이 어어졌고,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범죄 사실을 발견할 수 없었지만 유대인들에게 결정권을 넘겼습니다. 유대인들의 요구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사형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혐의는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라 한 죄, 사람으로서 하나님이라 한 죄, 이를테면 신성모독죄에 해당했습니다.

 

 

사형과 운명

 

재판이 마치자마자 즉시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을 채찍질하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가형의 첫 번째 순서였던 것입니다. 로마 군병들이 휘두르는 채찍에는 쇳조각이나 동물의 뼛조각이 달려 있었는데, 죄수가 창상을 입도록 고안된 것이었습니다. 창상의 출혈로 십자가에서 빨리 죽음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기 때문에 채찍질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살점이 떨어져 나오는 것은 물론, 때로는 뼈가 드러나거나 내장이 쏟아져 나올 만큼의 깊은 상처를 입혔다.


군병들은 채찍질로 예수님의 온몸을 난도질한 후, 가시로 만든 관을 머리에 씌우고 왕들이 입는 홍포를 입히고 손에 갈대를 들게 했습니다. 그러고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희롱했다. 어떤 이는 예수님께 침을 뱉고 어떤 이는 갈대를 빼앗아 머리를 때리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군병들과 유대인들의 조롱과 멸시 속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해골)라 불리는 언덕으로 끌려가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기 전, 군병들은 몰약을 탄 포도주를 예수님께 주려 했습니다.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마취제였지만 예수님은 사양하셨습니다.


본격적인 십자가형이 시작됐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고정시킨 후 굵고 긴 못을 예수님의 양손과 발에 사정없이 내리쳤다. 금요일 오전 아홉 시경의 일이었습니다.


이어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아 나누어 가졌습니다. 구약성경에 예언된 그대로였습니다(시편 22:18).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죄패가 붙어 있었고 양편에는 두 강도가 나란히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십자가형은 죽음 직전까지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형벌입니다. 사형수들은 십자가에 달린 채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못이 관통한 손과 발에서는 자연히 심한 출혈이 뒤따랐습니다. 때로는 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양손이 찢어지기도 했습니다. 출혈은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극심한 두통과 고열을 동반합니다.


숨 쉬는 것조차 힘겹습니다. 축 늘어진 몸을 가다듬어 숨을 들이마시려면 다리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순간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엄습해옵니다. 이 일은 숨이 붙어 있는 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복됩니다. 사형수들은 이렇게 창상, 출혈, 두통, 고열, 탈진, 배고픔, 갈증, 한기 등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혼절했다 깨어나기를 반복합니다. 그렇게 극한의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것입니다.


정오쯤 되자 온 세상이 어둠으로 뒤덮였습니다. 어둠은 세 시간 동안 지속됐습니다. 오후 세 시경,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고 땅이 진동했습니다. 예수님의 운명을 암시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빨리 사형수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수습해달라고 재촉했습니다. 다리를 꺾는 이유는 숨을 쉬기 위해 본능적으로 다리를 지탱하며 안간힘을 쓰는 사형수들이 빨리 숨을 멎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안락사였습니다. 로마 군병들은 두 강도의 다리를 꺾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미 운명하신 상태였기 때문에 한 군병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또 다른 예언이 성취되는 순간이었습니다(출애굽기 12:46, 고린도전서 5:7, 요한복음 19:32~37).

 

유월절과 유언

 

“다 이루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이루셨다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유언은 전날 밤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 석상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날 저녁 하셨던 말씀이 유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날은 무교절의 첫날, 유월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특별한 심부름을 시키셨습니다. 유월절 만찬을 먹을 객실을 준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마가의 소유로 전해지는 큰 다락방이 준비되었고 저녁이 되어 열두 제자와 함께 자리하셨습니다.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3년에 걸쳐 완성한 벽화 ‘최후의 만찬’은 이 일을 모티브로 한 것입니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누가복음 22:15)


예수님께서는 떡을 들어 축복 기도를 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받아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포도주가 담긴 잔을 들어 축복 기도를 하시고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하신 말씀에 대한 약속 이행이었다(요한복음 6:54).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써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만 해도 성력 1월 14일 유월절이 되면 모세의 율법대로 일 년 된 어린양을 잡아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유월절 양의 실체이신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써 당신의 살과 피에 참예하는 새 율법을 세워주셨습니다. 인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그 처절한 고통을 당하시며 보혈을 흘리신 희생의 결정체가 바로 유월절입니다.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 유언한 자가 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9:16~22)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고난을 받기 전, 죄 사함과 영생이 약속된 새 언약의 유월절을 선포하시며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십자가에서 피 흘려 희생하심으로 유언의 효력을 발생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최종적으로 이루신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새 언약 유월절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과 신비 그리고 위대하신 사랑과 희생이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유언은 자녀들에게 있어 사무치도록 뼈저린 것입니다.

 

출처:패스티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