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마음모아 2017. 6. 29. 01:12

엄숙한 절기, 대속죄일


대속죄일은 자신이 지었던 죄를 회개하며
경건하게 보내야 하는 하나님의 규례다.

 


유대인에게 있어 가장 엄숙한 절기를 말하자면 속죄일을 들 수 있습니다. 성력 에다님월(7월) 10일 속죄일(욤 키푸르)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두 번째 십계명을 받아서 내려온 날이다. 양력으로는 9~10월경에 해당합니다.

 

속죄 염소[출처: 윌리엄 홀먼 헌트 作, 1854~5]


첫 번째 받았던 십계명 돌판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함으로 진노하여 깨뜨려버린 후 하나님께서는 노심초사 하나님의 용서만을 바라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모세를 부르셨습니다(출애굽기 32:1~35). 첫 번째 십계명 돌판을 깨뜨린 지 40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 네가 깨뜨린 바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아침 전에 예비하고 아침에 시내산에 올라와 산꼭대기에서 내게 보이되 (출애굽기 34:1~2)
 

그날이 성력 6월 1일이었습니다. 모세는 40일 동안 하나님과 함께하며 두 번째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모세가 내려오기로 한 열흘 전 성력 7월 1일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을 불며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경건한 몸과 마음으로 모세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두 번째 돌판을 들고 내려오던 이날을 기념해 하나님께서는 속죄일로 정해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레위기 23:26~28)

 

 


 

속죄일은 대제사장에게는 아주 특별한 날입니. 일년에 딱 하루 ‘회개의 10일’이라 불리는 이날에 대제사장만이 행하는 의식이 있습니다. 바로 지성소의 출입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안치된 지성소는 성소의 두 번째 장막으로 그 누구도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백성들의 죄사함을 위해 잡은 염소의 피를 언약궤 덮개인 속죄소에 뿌렸습니다.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를 행하고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히브리서 9:3~7)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해 동안 지었던 모든 죄를 이날에 와서야 온전히 사함받을 수 있었습니. 속죄라는 의식은 하나님과 멀어졌던 백성들의 마음을 다시금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엮어주는 예식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더없이 엄숙하며 경건한 몸과 마음으로 이날을 기념해 왔습니다. 이와 함께 속죄일에는 성소에 뿌렸던 모든 피를 모아 ‘아사셀’이라는 이름의 염소에게 지우고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로 보내는 의식이 있다습니.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권속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 두 염소를 취하여 회막문 여호와 앞에 두고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레위기 16:6~10)
 

이러한 예식은 성전 되신 예수님으로 성취됩니다. 즉 일상생활에서 범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성소로 임시 옮겨졌다가 속죄일을 통해 아사셀 수염소에게 그 죄를 안수해 광야 무인지경으로 보내 죽게 한 것같이, 평상시에 지었던 우리들의 죄가 성소로 표상된 그리스도에게로 임시 옮겨졌다가 속죄일을 통해 사단 마귀에게로 옮겨진 후 사단은 최종적으로 죄를 짊어진 채 광야 무인지경 같은 지옥에서 고난받으며 멸망할 것을 대속죄일 절기를 통해 그 이치를 설명해주고 있습니. 그러므로 대속죄일은 죄사함을 바라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일년에 한 번 꼭 지켜야 하는 예식입니.
 

이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이날에 누구든지 아무 일이나 하는 자는 내가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니 너희는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레위기 23:29~31)
 

대속죄일은 자신이 지었던 죄를 생각하며 회개의 마음으로 경건하게 보내야 하는 하나님의 규례입니다.

 

 

posted by 마음모아 2017. 6. 27. 23:39

나팔을 불어 기념하는 나팔절


이스라엘 민족들이 지켰던 가을절기의 시작을 알렸던 나팔절은
안도와 기쁨, 회개 등의 다양한 감정이 섞여 있습니다.

 

 


고대 시대 나팔은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특히 전쟁에 있어 지휘와 명령 전달의 도구였던 나팔의 역할은 가장 중요했습니다. 통신 장비가 구비되어 있지 않았던 시기 공격과 후퇴, 출발, 멈춤, 대오 정렬, 무기 준비, 발사 등이 모두 나팔소리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외에도 성경에서는 더 다양한 나팔의 쓰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지파가 이동할 때 나팔을 불었습니다. 각 지파들의 소집과 해산 등이 나팔로 가능했으며 기쁠 때도 나팔을 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이유로 부는 나팔 중 성경에서 가장 중요시했던 나팔은 성력 7월 1일 나팔절에 불었던 나팔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지켰던 가을절기의 시작을 알렸던 나팔절은 안도와 기쁨, 회개 등의 다양한 감정이 섞여 있습니다.

 

 


 

나팔절의 의미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이집트를 나온 후 처음 십계명을 받아온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해주신 십계명의 두 돌판을 들고 내려오던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들의 배도를 목격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받기 위해 경건한 몸과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으리라 여겼던 모세는 백성들의 우상숭배를 보고 그 자리에서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던져 깨뜨려버렸습니다. 그날 이스라엘 백성들 중 삼천 명가량이 죽었습니다.


그 후 모세는 백성들의 죄사함을 위해 진과 멀리 떨어진 곳에 회막을 치고 매일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날의 죄로 하나님께 버려질까 염려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회막에서 기도하는 모세를 보며 자신들의 죄를 뉘우쳤습니다. 귀걸이며 목걸이를 볼 때마다 금송아지를 만들며 휘청거리던 지난날을 떠올렸습니다. 너무도 어리석었던 그때를 돌아보며 몸에 지니고 있던 단장품들을 모두 제했습니다. 그들은 하루라도 빨리 하나님께서 노를 거두시기만을 바랐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매일이 더 간절했습니다.


그렇게 40일이 흘렀습니다. 엄숙하고 조용한 가운데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다시금 십계명을 허락해주신 것입니다. 백성들은 그제야 안도했습니다. 그리고 기뻤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축복을 받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즐거움으로 가득했습니다. 이제 열흘 후면 모세가 십계명을 가지고 내려올 것입니다. 백성들은 처음의 잘못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그날을 기억하고 회개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려 나팔을 불었습니. 길게 부는 나팔은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의미였습니다. 나팔을 불며 모세를 기다리던 백성들은 우상에 빠지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이러한 모세의 행적을 따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팔절을 제정해주셨습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를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레위기 23: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레위기 23:23~24)


나팔절은 가을절기의 대표되는 초막절 속에 들어갑니다. 초막절 안에는 나팔절과 대속죄일, 초막절이 편성돼 있습니. 날짜도 성력 7월 한 달 안에 모두 들어 있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의 시작인 나팔절이 되면 예루살렘을 방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초막절을 맞아 예루살렘에서 전도하신 것은 초막절뿐 아니라 초막절에 내포되어 있는 나팔절과 대속죄일도 함께 지키셨음을 알 수 있습니.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한복음 7:2, 14, 37)


나팔절은 하나님께서 제정해주신 일곱 절기 가운데 다섯 번째 절기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절기입니다.

 

 

 

 

 

 

 

 

posted by 마음모아 2017. 6. 25. 13:22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성경은 가장 오랫동안 인류에게 읽혀온 스테디셀러(Steady Seller)입니다. 전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6,500개의 언어 가운데 성경은 약 2,500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언어로 번역되면서 세상에는 수많은 교파들과 수많은 교회들이 저마다 조금씩 다르게 성경을 해석하고 그 교리를 ‘진리’로 가르치고 있습니. 과연 그 많은 교회 중 어느 교회가 성경을 하나님의 뜻대로 올바르게 해석하고 있을까요. 성경에서는 오직 ‘다윗의 뿌리’만이 성경을 올바로 해석해주실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5:1~5)

 


요한은 밧모섬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인봉된 성경의 비밀을 개봉해주시는 ‘다윗의 뿌리’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예언 가운데 ‘보좌에 앉으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른손에 가지신 책’은 당연 성경입니다. 그런데 이 계시 속에서 요한은 성경이 어느 누구도 펴거나 보거나 할 수 없도록 ‘인봉’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의 비밀을 아무도 볼 수가 없어 답답한 마음에 크게 울었던 요한에게 한 사람이 다가와 ‘다윗의 뿌리’만이 인봉된 성경의 비밀을 풀 수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성경의 비밀은 유명한 목사도, 신학자도 아닌 오직 ‘다윗의 뿌리’만이 풀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다윗의 뿌리’가 세운 교회에 가야 성경을 올바르게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마지막 때 다윗을 구하고 경외하는 사람들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하므로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호세아 3:5)

 

 


말일(末日)에, 즉 마지막 때에 다윗을 경외하지 않고서는 결코 구원의 은총으로 다가갈 수 없기에 이 시대 우리는 반드시 다윗의 뿌리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6)

 

 

 


성경의 모든 비밀을 올바로 해석해주고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다윗의 뿌리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5장에 등장하는 다윗의 뿌리는 과연 ‘초림 예수님’일까 ‘재림 예수님’일까요? .물론, 요한계시록은 이미 초림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다가 하늘로 올라가신 후 쓰여졌기 때문에 초림에 대한 예언이 아닌 것만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더욱 확실한 해답은 ‘인봉’이라는 단어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예언은 초림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구원의 말씀이 인봉된 후 다시 개봉할 역사에 대한 예언인 고로, 다윗의 뿌리는 재림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초림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다시 오실 때, 수많은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도 함께 등장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마태복음 24:3, 24)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다윗의 뿌리인 재림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이 문제는 다윗의 뿌리만이 가지고 오는 ‘확실한 증표’로만 알수가 있습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이사야 55:3)

 


다윗에게만 주신 확실한 은혜는 영혼을 살리는 ‘영원한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뿌리인 재림 예수님은 반드시 영원한 언약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영원한 언약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받은 옛 언약이 아닙니다. AD 80년경 쓰인 ‘히브리서’는 이 영원한 언약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히브리서 13:20)

 


히브리서는 ‘영원한 언약’에 대해 논하며 ‘피’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영원한 언약에는 반드시 예수님의 피가 내재돼 있어야 함을 뜻합니다. 때로는 아주 중요한 약속을 하며 변치 않겠다는 의지로 ‘혈서’를 쓰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영생을 약속하시며 피로써 절대 변치 않는 ‘영원한 언약’을 세워주셨습니다. 한정적이고 유한하지 않은, 무한하고 영원한 ‘언약의 피’는 무엇일까요?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6~28)

 


이 장면은 유월절 성만찬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자리에서 떡을 일컬어 ‘당신의 몸’, 포도주를 일컬어 ‘당신의 피’라고 하시며 이를 보다 확실하게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드시, 꼭, 확실하게 죄를 사해주시고 이로써 구원을 주시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와 동일한 장면을 묘사하며 누가는 ‘새 언약’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20)

 


따라서 영원한 언약은 예수님께서 피로 세워주신 유월절 새 언약입니다. 다윗이 가지고 올 확실한 증표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일에 새 언약 유월절을 가지고 나타나신 분은 요한이 계시를 통해 보았던 다윗의 뿌리가 됩니다. 다윗의 뿌리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성경을 올바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만약 다윗의 뿌리가 아니면서, 즉 새 언약 유월절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면서 성경을 해석한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화를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베드로후서 3:16)

 


다윗의 뿌리로 오시는 재림 예수님은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 어느 누구도 해석할 수 없었던 성경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고 있는 다윗의 뿌리가 세우신 교회라야 올바로 성경을 해석하는 진리 교회입니다.

 

 

 

 

 

posted by 마음모아 2017. 6. 12. 00:45

하나님의 피로 세워진 교회


국내에 설립된 교회는 약 6만여 곳으로 한 성경을 보고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교리를 가지고 성도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많은 종류의 교회들 중에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교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는 어디일까요.

 


국내에 설립된 교회 수는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천주교, 성공회 등을 합쳐 약 6만개 정도입니다. 이는 소종파를 제외한 수치입니다. 다시 말해, 십자가를 세우고 교회로 운영하는 곳만 6만여 곳이라는 말입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통계연보에 의하면 국내 총 가구수는 대략 1,800만 가구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300가구당 하나는 교회라는 얘기입니다. 이는 평균적인 수치고 밀집도는 다릅니다. 100가구도 안 되는 작은 마을에 두세 개의 교회가 존재하는 곳도 있습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이러한 결과를 예언으로 보이셨습니다.

최후의 만찬[출처: 필립 뉴 샹페뉴作 17세기경]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뇨 그들이 너의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 (예레미야 2:28)


이렇게 많은 교회 중 우리의 영혼을 의탁해 천국으로 이끌어줄 교회를 발견한다는 건 어찌 보면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만큼 힘든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바라시기에 성경을 통해 당신께서 세우신 교회를 만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는 분명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교회가 등장합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20:28)


이 장면은 사도 바울이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위해 에베소에 있는 장로들에게 고별 설교를 하는 모습입니다. 성도들의 교육과 믿음의 성장을 걱정했던 바울은 자신이 떠난 뒤에라도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올바로 지켜나가길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내용 가운데 하나의 ‘교회’를 언급했습니다. 그 교회는 초대 사도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던 기독교인들이 다녔던 교회입니다. 로마의 압제와 핍박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켜나갔던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하나님께서 피로 사신 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다’는 뜻은 ‘하나님의 피로 세우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다’(표준새번역)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당신의 피로 교회를 세울 수 있었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 공동번역 성경을 통해 보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늘 자신을 살피며 성령께서 맡겨 주신 양떼들을 잘 돌보시오. 성령께서는 여러분을 감독으로 세우셔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값을 치르고 얻으신 당신의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습니다. (공동번역 사도행전 20:28)


하나님께서 피로 사신 교회란 바로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 대가를 치르고 세우신 교회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피로 세워진 교회는 당연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직접 피의 대가를 지불하고 교회가 세워졌다면 이에 대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다. ‘하나님의 피’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그 증거를 확신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8)


예수님께서 ‘나의 피’라고 말씀하신 ‘이것’은 바로 유월절의 포도주입니다. 유월절 성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떡이 당신의 몸이며, 포도주가 당신의 피임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피’로 세우신 교회는 ‘유월절’이라는 진리가 있어야 합니다. 유월절 진리가 없다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아닙니다. 이는 오늘날 세워진 6만 개의 교회가 하나님의 소유가 아니라는 결론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피’를 의미하는 유월절을 지키고 있지 않으니 당연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곧, 아무리 하나님을 부르짖어도 그곳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수많은 교회 중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피로 세워주신 교회는 어디일까요? 우리의 영혼을 의탁하고 천국으로 인도해줄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 그 교회의 이름은 바로 ‘하나님의 교회’라고 성경에서는 알려주고 있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고린도전서 1:2)


그리스 남단에 위치한 고린도라는 지역에 ‘하나님의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의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사도 바울은 ‘성도’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에서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지만 에베소에 있는 하나님의교회도 있었고, 갈라디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빌립보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로마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골로새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등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초대교회 즉, 초대 하나님의교회 당시에는 소아시아 지방 각 도시마다 ‘하나님의교회’가 존재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운명하신 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유럽과 아시아로 전파됐기 때문입니다. 그 와중에 바울 또한 유대교에서 하나님의교회로 개종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갈라디아서 1:13)


하나님께서 당신의 피를 대가로 세우신 교회는 그 이름이 ‘하나님의교회입니’다. 당연 하나님의교회는 ‘유월절’ 진리를 지켜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6만 개가 넘는 교회 가운데 유일하게 유월절을 지키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하나님의교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교회에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교회입니다.


초대 하나님의교회 당시 사도들을 핍박했던 유대교 사람들에게 교법사 가말리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사도행전 5:38~39)

 

 


하나님의교회의 정통성은 그 모든 사상과 소행이 하나님께로 나왔기에

절대 변질될 수도, 흐려질 수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온 지구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피로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출처:패스티브

 

posted by 마음모아 2017. 6. 6. 14:18


하나님의교회 역사는 기독교회사와 맥락을 같이합니다.
기독교회사가 곧 하나님의교회 역사임을 2000년 전 예수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그 정통성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마가복음 1:1~10)


기독교의 시작점은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고부터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유대교를 믿었는데, 유대교는 그들 고유의 신앙으로 뿌리가 깊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며 구원자라고 믿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기독교는 신흥종교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이단으로 치부하며 배척했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유대인들의 섣부른 판단으로는 예수님만 없으면 그리스도교는 자연히 몰락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사형을 하루 앞둔 날 마가의 다락방으로 열두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새 언약의 법을 세워주셨습니다. 이날이 바로 우리들이 최후의 만찬으로 알고 있는 ‘유월절’입니다.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7, 19~20)


유월절 다음 날 예수님께서는 로마와 유대인들의 결탁에 의해 십자가형을 받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수장의 죽음으로 무리들은 당연히 흩어질 것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의외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열정으로 불타게 했고 결국 120명의 사도들은 유럽과 아시아 각지로 흩어졌습니다.


이 후부터 본격적인 초대교회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실질적인 교회가 세워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초대교회가 건물이라는 형태를 갖춘 것은 AD 100년이 넘어서입니다. 그전에는 House-church(가정예배) 형태로 명맥을 유지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로마의 박해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수중에 있었습니다. 로마는 태양신을 섬기던 다신교 국가로, 최고의 권위가 황제였습니다. 로마 시민은 누구든 국가의 모든 일에 복종해야 했습니다. 물론 기독교인들 역시 국가에 충성했지만 한 가지, 신앙을 지키는 데 있어서는 로마 황제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당연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눈엣가시였던 것입니다.


더욱이 로마 제국은 국가 통합의 목적으로 여러 신들과 함께 황제에게도 예배하는 종교가 성행했는데, 이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은 국가에 충성하지 못한 자들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로마의 황제들은 기독교 탄압정책을 펼쳐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박해 속에서도 초대교회는 House-church를 유지하며 그들의 믿음을 지켰나갔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교회 이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에 있는 교회로 편지를 보내며 교회 명칭을 언급했한 기록이 있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고린도전서 1:2)

 

 


로마의 탄압을 피해 가정으로 전전하며 예배를 드렸던 초대 기독교, 그 이름이 바로 하나님의교회였습니다. 즉, 기독교의 역사는 바로 하나님의교회의 역사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로마의 눈을 피해 믿음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에 대한 로마의 탄압은 갈수록 거세졌습니다.

 
폭군으로 유명한 네로 황제(재위 기간 54~68년)는 무고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학살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해가 지면 등불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재위 기간 284~305년) 황제 때에는 칙령을 반포해 기독교인들의 예배소를 헐고, 성경을 불태우며 기독교인들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 시기 기독교인들은 채찍질을 당한 뒤 피에 굶주린 맹수의 밥으로 던져지거나 화형을 당하고, 사지가 찢기는 등 끔찍하고 야만적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시신은 방치되었다가 불에 태워지거나 강에 던져졌으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로마 제국은 정부의 위력으로 기독교를 박멸하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박해를 피해 카타콤(지하무덤)에까지 숨어 들어가 예배를 드리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로마의 탄압을 피해 예배드렸던 장소, 카타콤.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로마가 내놓은 종교정책은 ‘종교의 자유’였습니다. 로마는 종교적 관용책을 펼치며 타 종교에 대해 묵인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단지 로마의 정치성향일 뿐이었습니다. 통치 차원에서 로마는 타 종교에 대한 관용을 베풀었으나 언제든지 필요하면 특정 신앙을 박해하거나 탄압할 수 있었습니다. 그 대상이 바로 기독교였던 것입니다.


갈수록 거세지는 탄압 가운데서도 기독교는 로마제국 전체로 전파됐습니다. 처음에는 평민이나 노예 중심으로 퍼져나갔으나 점차 상류층에서도 하나 둘 기독교를 믿는 무리가 생겨났습니다. 상류층의 입교는 기독교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이 무렵부터 신도들이 모이는 곳에는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3세기 말 무렵에는 전체 로마 인구 중 10%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놀라운 발전이었습니다. 박해를 견딘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더없는 평화가 찾아온 것입니다.

 
이와 함께 기독교를 심하게 박해하던 갈레리우스는 311년 임종 직전 기독교를 인정하는 칙령에 서명했습니다. 기독교의 승리였던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기쁨은 다음 해에 찾아왔습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밀라노에서 내린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것입니다. "모든 기독교도는 신앙의 자유가 있다." 이 짧은 문장은 기독교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기독교는 347년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이르러 국교로 인정받았습니. 탄압의 세월을 보내고 찾아온 눈물 겨운 결실이라 볼 수 있지만 사실 이 역사는 기독교의 타락을 가져왔습니. 다시 말해 기독교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교리가 이교도화돼버린 것입니.


이 무렵 하나님의교회 즉 기독교는 서서히 파벌이 생겼습니다. 성경대로 행해야 한다는 동아시아 교회와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묵인해도 된다는 로마교회였습니다. 결국 로마교회는 인본주의라는 독단적인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반면 동아시아 교회들은 성경을 위주로 하는 신본주의 사상을 고수했습니다. 두 지역 교회의 교리 논쟁은 AD 155년 유월절 논쟁으로 촉발되었습니다. 로마교회 지도자인 아니케터스와 동아시아에 있던 서머나교회 감독인 폴리카르푸스(폴리갑)가 서로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각자 유월절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당시 로마교회는 성경대로 유월절을 지키지 않고 있었습니다. 성력 1월 14일 저녁에 행하던 성찬식을 부활절에 같이 실행했습니다. 이런 로마교회의 새로운 관습은 성경대로 행하던 다른 지역 교회들과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197년 로마교회 감독이었던 빅터가 ‘도미닉의 규칙’이라는 법을 만들어 모든 기독교에 유월절 성찬식을 부활절에 하도록 강요했습니다.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들은 빅터의 결정에 따랐지만 동아시아 교회들은 모두 거부했습니다. 동아시아 교회 중 에베소교회의 감독 폴리크라테스는 빅터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는 편지에서 사도 빌립, 사도 요한을 비롯한 여러 순교자들이 1월 14일을 유월절로 지켰으며 8대 감독인 자신도 전임 감독의 가르침대로 유월절을 지킨다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유월절은 AD 325년에 폐지됐습니. 두 교리 간의 역법(曆法) 차이로 발생했다고는 하지만 이 또한 교리의 이교도화가 가져온 산물이었습니. 이 기간에 급격하게 로마교회의 교리는 변질됐습니다. AD 321년 일요일 휴업령으로 성경의 안식일을 버렸고, AD 354년 크리스마스를 유입시켰으며, AD 568년 십자가상을 도입했습니.

 

 

 

교리의 변화와 함께 논쟁이 거세질 즈음 군사적 약화와 내부적 혼란을 겪고 있던 서로마 제국으로 게르만계의 여러 부족이 대규모로 이동했습니다. 4세기 말 훈족의 서진(西進)에 자극을 받은 게르만민족은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전후하여 제국 각지에 정착하면서 여러 부족왕국을 건설했습니다. 이 시기 비록 서로마제국은 멸망했으나 로마교회는 건재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가 비잔틴으로 수도를 옮긴 뒤 서로마가 멸망하기까지인 약 100년 동안 로마교회는 나름대로 살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게르만민족의 대이동 후 여러 미개한 부족들은 왕국의 번영을 위해 로마교회와 손을 잡았습니다. 그중 재빨리 로마교회로 개종한 프랑크왕국은 처음부터 로마교회를 옹호하므로 지지를 얻었지만 로마교회에 정면으로 반대하던 나라 중 세 나라(헤룰리, 반달, 동고트)는 로마감독의 농간에 차례차례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성경적 진리를 버리고 이교도의 길을 걷고 있던 로마교회는 다른 게르만민족들을 포교할 목적으로 우상을 세우고, 교회를 웅장하게 꾸미기 시작하며, 타 민족의 풍습을 더욱 과감히 받아들였습니다. 각 지역의 문화적 특색처럼 등장하는 교회지붕, 스테인드글라스, 촛불, 성상숭배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로마교회의 위상은 이때부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 급기야 506년에는 동로마 황제까지 정책적으로 로마교회를 지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로마교회의 감독을 교회의 우두머리라는 칙령을 반포하는 한편 590년 ‘교황’이라는 칭호를 주었습니다. 천주교황의 탄생이었습니. 기독교의 세속화는 결국 종교적 괴물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시대는 로마카톨릭이 지배하는 종교 암흑시대로 치달았습니다.


AD 538년 교황은 적대 세력이었던 아리우스파의 동고트를 정복함으로써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종착점은 1798년 프랑스 혁명군이 교황 피우스 6세를 발렌스 성으로 유배시킨 때까지입니다. 이제 참다운 기독교인 하나님의교회는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도 사라진 후 교회는 교황의 손아귀에 들어갔습니다.

 
이와 함께 로마카톨릭의 부패는 갈수록 심각해졌습니. 교황직의 매매와 세속적 권력, 축첩, 간음, 사치, 정적 살해 등의 비리는 특정한 때, 특정 교황에게만 해당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황과 성직자들의 음란한 생활은 속담과 풍자로 민중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교황 레오 3세 때는 죄에 대한 벌을 사면해준다는 조건으로 금전이나 재물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른바 ‘면죄부가 그것입니다. 800년경에 판매가 시작된 면죄부는 15세기에 발행량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이처럼 천주교가 부패의 일로를 걷고 있을 무렵, 독일의 광산 노동자에게 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신학 교수를 거쳐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프로테스탄트의 사상을 만든 사람, 바로 마르틴 루터였습니다.


루터는 어느 날 수도사인 존 테첼의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동전이 그릇에 떨어져 땡그랑 소리를 내는 순간 영혼은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루터는 테첼의 면죄부 판매에 분개했습니다.


로마교회의 타락을 보며 실망했던 그는 당시 대주교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믿는 자의 전 생애가 회개 과정이 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라며 반박문을 보내고 교회의 문에 95개조에 달하는 긴 서한을 내걸었습니다. 비로소 종교개혁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후 프랑스의 칼뱅, 스위스의 츠빙글리 등 다양한 종교 개혁가들이 등장했습니다. 천주교에 뿌리를 두고 있던 이들은 종교개혁과 아울러 천주교에 대항하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개신교입니다. 천주교에서 분리되어 발생했다고는 하지만 교리적 측면에서 별반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대중들은 천주교나 개신교나 하나님을 믿는 곳이라는 인식의 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정통 기독교는 천주교나 개신교가 아니었습니. 마가의 다락방에서 새 언약 유월절을 세워주시며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리라’ 하신 교회는 바로 하나님의교회입니다. 사도들도 다녔으며 그의 제자들도 죽음을 불사하고 지켰던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 정통성을 고수하며 초대교회 사도들의 믿음을 지키는 그 하나님의교회가 1964년 안상홍님에 의해 복권된 것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7)


인류가 바라는 구원을 주시기 위해 두 번째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그로 말미암아 2000년 전 사라졌던 하나님의교회가 수복된 것입니다. 2000년의 세월 속에 수많은 종교가 생겨나고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생겨나며 사라지고 있습니다. 종교의 홍수 속에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정통 기독교를 만나고 싶다면 처음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했던 새 언약 유월절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 십자가 운명 이후 AD 325년 폐지되므로 종교인의 마음에서 사라졌던 유월절. 그 유월절 진리를 가지고 있는 정통기독교가 바로 하나님의교회입니다.

 <출처:패스티브>

 

 

 

 

 

 

posted by 마음모아 2017. 5. 30. 23:09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자신을 복음의 일꾼이되었다라고(골 1:23)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님께서 전파하시고

사도들들도 전했던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파해야 할 이 천국복음이 무엇이지 알지 못한다면

복음을 전할 수도 없고 복음의 일꾼도 될 수가 없습니다

 

. 더군다나 성경에서는 기록된 천국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는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천국 복음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그리고 정확히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지금부터 그리스도께서 전파하셨던 복음이 무엇인지를 성경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복음이란 문자적으로 ‘복된 소식’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 복음은 구원과 직결되는 만큼 신앙생활에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합니다. 이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혜택이 아주 크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에베소서 3:6)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후사가 되고 지체가 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의 약속에 참예할 수 있다는 것은 곧 복음으로 천국에 갈 수 있음을 뜻합니다(요한일서 2:25).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공생애 속에 가장 먼저 하신 일이 바로 복음 전파입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태복음 4:23)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것은 천국 복음입니다. 그저 사람들의 귀에 즐거운 한낱 좋은 소식이 아닌 영혼의 생명을 소성시킬 수 있는 ‘복음’은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모든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도 함께 지켰습니다. 그것은 이들이 복음 속에 담긴 축복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큰 축복이 담긴 복음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흔히들 ‘복음’이라는 단어에만 중요성을 두고 ‘복음 교회’, ‘복음 선교’, ‘복음 의상실’ 등 각종 명칭에 ‘복음’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이 중요한 것은 명칭보다 그 속에 담긴 내용입니다. 우리는 앞서 복음을 통해 허락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살펴 보았는데, 하나님의 후사가 되고 하나님의 지체가 되며 영생의 약속을 얻을 수 있는 통로가 바로 복음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성경에서 이와 같은 특징을 가진 진리는 무엇이 있을까요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히브리서 8:8~10)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을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새 언약이 뜻하는 것은 유월절입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누가복음 22:8)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20)


다시 말해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을 유업으로 받게 됩니다. 이는 복음이 곧 새 언약 유월절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복음으로 하나님의 지체가 된다는 말씀도 새 언약 유월절 지키는 자가 하나님의 지체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고린도전서 10:16~17)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할 수 있는 예식은 유월절 성만찬 예식 뿐입니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6~28)


유월절의 떡이 그리스도의 몸이며 유월절의 잔이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즉 유월절을 지킴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게 되고 모두가 한 몸이 되고어하나님의 지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면 얻게 되는 축복 중 하나가 죄 사함입니다.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8, 26~28)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사망의 굴레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는 것이다(로마서 6:23).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천국복음은 곧 새 언약 유월절니며,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킴으로 우리는하나님의 약속인 영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복음에 내포된 후사, 지체, 영생의 축복이

고스란히 새 언약 유월절 속에 담겨 있습니다.

 

 명칭만 ‘복음’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다 복음이 아닙니다.

 만약 어느 교회에서 복음을 전파한다면 그 속에는 새 언약 유월절 진리가 있어야 합니.

새 언약도 모르고 유월절도 지키지 않으면서 복음을 전파한다면 이는 다른 복음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서 1:6~9)

 


 

다른 복음은 없다고 하였고, 다른 복음의 결과는 오직 저주뿐이라고 성경은 경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복음의 핵심인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는 다른 복음으로 멸망의 대상이 됩니다. 성경에서 증거하는 천국 복음은 새 언약 유월절이며 하나님의교회에서는 초림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새 언약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사도행전 5:38~39)

 

 

출처:패스티브

posted by 마음모아 2017. 5. 27. 00:51

흔히들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 할때 사람들은 정통교회냐 이단(즉 다른사상)교회냐로 나누어 말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단이라는 말을 들으면 수많은 언로보도를 통해 알려진 사이비 종교 즉, 사람들을 끌여들여 그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재산을 갈취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집단을 떠올리게 됩니니다.

하지만 이단의 정확한 뜻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내용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각 나라의 대통령상과 영국여왕상을 받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사이비 교회로 치부하는 이단이라는 명칭의 사용이 적절할까요?

 

 

 

과연 하피모는 이런 이단이라는 말의 뜻을 정확히 알고 하나님의 교회를 이단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이단의 정의를 살펴본다면 어디에 기준을 두고 있느냐에 따라 상대적 이단과 절대적인 이단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상대적 이단에 대해서는 그 기준이 다른 교리를 가진 한 교회의 사상이 이기 때문에 그 교회와 다른 교리(사상)을 가지고 가르치는 모든 교회에 대해서 상대적 이단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례를 주장하는 장로교회의 경우 장로교회와 다른 교리룰 가진 침례가 맞다고 주장하는 침례교회가 이단이 되는 것이고 바꾸어 침례의 교리가 맞다고 주장하는  침례교회의 경우 침례가 아닌 셰례의 예식을 행하는 장로교회가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상대적 이단은 나와 다른 사상을 가진 같은 종교단체에게 쓰일 수 있는 말이기 때문에 객관적일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절대적 이단은 그 기준이 성경이기 때문에 성경적이지 않는 모든 교회를 절대적 이단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마다 한 성경을 보고 있는데도 각기 자신들에게 맞는 성경말씀만 받아들이다 보니 기독교 교리만도 800개가 넘는 종파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절대적인 기준을 가진 이단의 정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절대적 이단은 성경이 그 기준이 되어 성경에 없는 가르침을 가진 모든 교회를 절대적 이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객관적인 기준을 가진 절대적 이단을 두고 이단이라고 불려야  올바른 이단의 의 의미로 사용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초대교회 진리를 모두 온전히 지키고 있는 성경적인 교회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올바로 전하는 하나님의 교회는 절대로 이단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출처:패스티브

 

posted by 마음모아 2017. 5. 17. 00:11

안상홍님은 과연 재림하신 예수님일까?

 

예수님의 재림을 심판하실 강림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람으로 오신 안상홍님을 재림하신 예수님으로 믿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분명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이땅에 심판을 위해 강림하시기 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재림하시겠다는 말씀이 성경 곳곳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식사회라 할 만큼 많은 지식과 정보가 넘치는 이시대에서 성경을 통해 모든 것을 예언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대로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제하기도 하고 더하기도 하여 여러말로 지어낸 사상을 가지고 하나님으르 섬기는 무리가 허다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성경 말씀 그대로를 기준삼고  그 터를 바탕으로 믿음을 가지위한 노력을 끝까지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두번째 이땅에 육체를 입고 재림하셔야 하는 이유애 대한 답을 찾기위해서는 먼저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땅에 오신 구원자입니다. 그런데 인류는 왜 구원자가 필요한것일까요? 또 인류에게 닥친 위기는 무엇이기에 구원자가 등장해야 하고 우리가 기다리는 이 시대의 구원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은 고민해 봤을 질문들일 것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0:10)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인류에게 생명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지구상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명이 있습니다. 굳이 예수님이 아니더라도 생명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오셨다고 하니 예수님께서 주려고 하는 ‘생명’은 무엇이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한복음 6:63)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시려는 것은 육신의 수한을 늘려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위 말씀처럼 무익한 육신의 목숨이 아닌 영원히 사는 영혼의 생명, 즉 ‘영생’을 주고 싶어 하신 것입니다. 바로 유한한 삶을 생명의 전부로 여기고 살아가는 인류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 오셨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인류는 왜 영생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그 해답은 창조의 역사가 수록된 창세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6~17)

 


하나님께서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그곳에 살게 하시고, 모든 것을 다스리며 자유를 만끽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단 하나, 바로 선악과만큼은 먹지 말라는 금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단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뱀의 꼬임으로 결국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하나님의 금령을 어긴 결과는  바로 인류의 죽음이였습니다. 하지만 사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어도 다시 살 수 있는 길은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세기 3:22)

 

 

 

 


그 방법은 바로 생명과 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라 할지라도 생명과를 먹는다면 영생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범죄한 아담과 하와가 생명과를 먹고 영생할 수 없도록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세기 3:24)

 


그룹천사들과 화염검은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가 생명과에 손을 댈 수 없도록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켰습니다. 결국 생명과의 길은 막혔고 인류는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 이후 지금까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길을 가고 있게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의 굴레에서 인류를 구원해 주시려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손댈 수 없었던 그 생명과를 가지고 말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6:53)

 


인류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오신 예수님께서 에덴동산의 생명과라며 주신 것이 당신의 살과 피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살과 피는 에덴동산의 생명과라는 뜻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이해해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태복음 13:34~35)

 

 

 

 


창세의 역사 속에 감추어진 것은 무엇일까요?

 

그룹들과 화염검으로 감추어버린 것

 

바로 생명과 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비유’라고 하시며

 

실체는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꼭 당신의 살과 피를 먹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살과 피는 어떻게 먹고 마실 수 있을까요?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7, 26~28)

 


인자의 살과 피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이 곧 영생을 얻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 유월절은 에덴동산의 생명과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인류는 구원을 얻기 위해 유월절을 반드시 지켜야 하며 유월절을 지키는 것만이 영생을 소유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고 하신 것이다(누가복음 22:15). 이 말씀 속에는 유월절만이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류에게 지키라고 예수님께서 전하여 주신 유월절이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생명과의 진리인 유월절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인류에게는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를 회복하기 위해 재림이라는 도구가 필요한 것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7~28)

 

 

 

 


두 번째 나타나심, 즉 재림은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는 처음부터 인류를 위하신 하나님의 마음이며 단 한 번도 변치 않은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두 번째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재림 그리스도는

 

그 오시는 목적대로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에덴동산의 생명과인 ‘유월절’을 가지고 오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두 번째 오셔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이 바로 이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토록 원했던 ‘생명과’를 우리에게 찾아주는 것. 그룹천사들과 화염검으로 막아놓았던 생명과로 가는 그 길을, 오직 하나님만이 열어주실 수 있는 그 길을, 유월절이라는 진리로 알려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친히 두 번째 이 땅에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출처:패스티브

 

posted by 마음모아 2017. 5. 9. 23:50

유월절의 비밀......제 2유월절

 

 

 

누가복음 22장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운명하시기 전날 밤,

이 유월절을 제자들과 함께 지키길 원하고 원한다고 말씀하신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월절이 무엇이기에 예수님께서 그토록 지키기를 간절히 원하셨을까요.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15, 19~20)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가리켜 당신의 살과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을 새 언약이라고 하셨습니다.

약속을 남기신 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음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유언을 남기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한복음 6:53~54)

 

 


영원한 생명, 이것을 인류에게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양의 실체가 되셔서 희생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유월절의 비밀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게 된 사람들을 위해

허락해 주신 절기가 바로 제 2유월절 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는 모두 1년에 한번씩 지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유월절만 일년에 두 번 지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제2유월절에 대한 말씀은 민수기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때에 사람의 시체로 인하여 부정케 되어서 유월절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당일에 모세와 아론 앞에 이르러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사람의 시체로 인하여 부정케 되었거니와 우리를 금지하여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정기에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지 못하게 하심은 어찜이니이까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기다리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어떻게 명하시는지 내가 들으리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나 너희 후손 중에 시체로 인하여 부정케 되든지 먼 여행 중에 있든지 할찌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되 이월 십사일 해 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어린 양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아울러 먹을 것이요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 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사람이 정결도 하고 여행 중에도 있지 아니하면서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니 이런 사람은 그 정기에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지 아니하였은즉 그 죄를 당할찌며(
민수기 9장 6-13)

 

 


제 2유월절은 성력 2월 14일 저녁

양력으로 2017년 5월 10일 바로 내일 저녁에 일제히 거행됩니다. 

이 유월절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죄사함과 영생의 축복을 값없이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원하고 원하셨던 영원한 생명의 약속이 담긴 유월절의 가치를 알고 지켜서 영생의 축복 모두 받으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마음모아 2017. 5. 6. 00:30

 

우리는 이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하늘에 있었던 천사 였다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욥 38:1~7, 잠  7:22~31)

 

 

 

 

 

 

 

하늘의 천사였던 우리가 하늘에서 쫒겨나

이땅에 내려와 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대적했던

 

 우리의 교만한 마음 때문이였습니다.(사 14:12~15)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진실로 통회하며 회개하는 겸손한 자를 찾으시 구원며 해 주십니다.

 

 

 

이사야 57장 15절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소성케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시며 그영혼을 소성케하시며,

겸손한 자에게 생명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겸손한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누가복음 18장 9~14절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씨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바로 누가복음에 비유로 기록되어 있는 세리와 같이

자신의 죄를 알고 통회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겸손한 자들만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왜냐구요?

 

 

그건 바로 겸손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앞서 하나님을 더 잘 섬기려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더하거나 빼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천국에 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재앙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계시록 22:18~19)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겸손한 자들은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자들입니다.

 

 

 

 

 

 

 

스바냐 2:1~3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찌어다 모일찌어다 명령이 시행되기 전 광음이겨같이 날아 지나가기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하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 찌어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로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규례대로 행하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겸손한 자들이며 

 

 

이런 겸손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계명을 그  규례대로 올바로 지키고 있는

성경에 예언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교회,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시는

 

유일한 교회입니다.